15일 저녁 전국 8개 구장에서 2020 하나은행 FA컵 16강(4라운드) 경기가 있었다. 16강 경기 결과 FC서울, 포항스틸러스, 수원삼성, 성남FC, 전북현대, 강원FC, 울산현대, 부산아이파크가 8강에 올랐다. 모두 K리그1 소속팀으로 올해는 약팀이 선전하는 이변 없이 최상위 K리그1 팀들이 우승컵을 놓고 다투게 됐다.
이 중 FC서울, 수원삼성, 전북현대, 울산현대는 16강부터 대회에 참가했다. 4팀은 올해 AFC챔피언스리그(이하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는 팀들이다. 대회를 주관하는 대한축구협회는 "ACL 참가 팀들은 그동안 시즌 초반 K리그와 ACL, FA CUP까지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번 대회 일정 변경을 통해 ACL에 참가하는 팀들이 모든 대회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면서 한층 나은 경기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익숙한 프로팀 시드배정 속에 숨은 문제점
협회 언급대로 챔피언스리그 참가팀 4팀을 콕 집어 16강(4라운드) 시드를 배정한 이유는 K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하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시드 배정 혜택이 FA컵 대회 자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에 있다.
FA컵은 대회에 참가하는 프로와 아마추어 간 실력차이가 명확하기 때문에 프로팀은 대회 중간에 합류하곤 한다. 일본 FA컵(일왕배)은 프로팀이 2라운드(64강)부터 참가하며, 잉글랜드 FA컵은 3라운드(64강)부터 대회에 참가한다. 프로팀에게 시드를 배정하는 운영은 보편적인 방식이다.
올해 대한축구협회 FA컵은 K리그2 팀들이 2라운드(48강)부터, 앞서 언급한 4팀을 제외한 K리그1 소속 8팀은 3라운드(24강)부터 대회에 참가했다. 여기까지는 프로팀 실력 격차에 따른 시드배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참가 4팀에게만 부여한 시드배정은 FA컵 대회 자체 시드배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FA컵 우승팀은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자격을 얻는다. 그렇다고 FA컵이 챔피언스리그 참가팀 일정을 위해 편의를 봐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 FA컵과 챔피언스리그는 완전히 다른 별개 대회기 때문이다. 챔피언스리그 참가팀 4팀에게만 부여한 시드는 통상 부여하던 FA컵 시드배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특정팀에게만 부여한 '특혜'다. 덕분에 16강부터 대회에 참가하는 4팀은 다른 참가 팀과 달리 대회에서 4번만 이기면 우승할 수 있게 됐다. 우승을 목표로 대회에 참가하는 팀 사이에 출발선 자체가 달라졌고 대회 공정성을 해치게 됐다.
16강 혜택은 협회 스스로 대회 권위를 떨어트린 결정
16강 시드배정으로 인한 공정성 훼손은 결과적으로 대회 권위까지 훼손시킨다. FA컵을 향한 축구계 반응은 다소 싸늘한 편이다. 언론에서는 ‘주중에 하는 끼인 경기’ 정도로 보도하기도 하며, "정규리그와 FA컵은 다르다. 같은 주중 경기를 해도 왠지 심드렁하다", "FA컵은 집중이 어렵다.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도 형성하기 어렵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며 경기에 나서고 있다"는 축구계 관계자 의견도 언론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물론 각국 최상위 클럽이 맞붙는 챔피언스리그는 더욱 규모가 큰 대회고, 매주 최상위 팀들이 경기하는 프로리그와 달리 실력 격차도 크고 참가팀 유명세도 떨어지는 FA컵은 관심도가 떨어지기 쉽다. 이는 한국축구만 가지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협회가 부여한 16강 특혜가 더욱 아쉽다. 언론과 관계자가 대회를 향해 다소 부정적인 발언을 해도,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는 대회 중심을 잡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대회 성적을 위해 협회가 자신들이 주관하는 FA컵에서 특정팀에게 특혜를 준 결정은, 협회부터가 FA컵을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걸려있는 하위 격 대회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16강(4라운드) 시드 특혜가 던지는 시사점
물론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K리그 팀 선전을 바라는 협회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축구팬 마음도 다르지 않다. 그래도 그건 마음으로 할 일이지 자신들이 주관하는 FA컵 대회 권위를 스스로 해치면서까지 편의를 봐줄 이유는 없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챔피언스리그는 K리그 팀들이 독식하던 무대였다. K리그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회 연속 결승에 올랐다. 결승진출팀은 포항스틸러스(2009), 성남일화(2010), 전북현대(2011), 울산현대(2012), FC서울(2013)로 매해 다른 팀이 결승에 올랐다. 리그 내 특정 팀이 자국리그와 국제무대 모두에서 독주하는 흐름이 아니었다.
K리그에 참가하는 팀 전반이 아시아 무대를 제패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2013년 이후 K리그 팀이 결승전에 진출한 건 2016년 전북현대가 유일하다. 2010년대 초반 K리그 팀들이 챔피언스리그에서 독보적인 성적을 거둘 때 FA컵 참가와 관련해 어떤 혜택도 없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성적을 거둔 당시였다.
만약 오늘날 협회가 FA컵 권위를 스스로 해쳐가면서 편의를 봐줘야 K리그 팀들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우승까지 노릴 수 있다면, 그냥 지금 한국 축구가 아시아 무대를 제패할 실력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한국 축구 실력 전반을 다시 강화할 생각을 해야지 FA컵에서 특혜를 주는 식으로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
아시아 무대를 휩쓸던 K리그 팀들을 함께 생각해보면, 이번 FA컵 16강 특혜가 더욱 아쉽다. 2020 FA컵 16강(4라운드) 특혜는 FA컵 대회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듦과 동시에, 아시아 무대에서 K리그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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