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서부에 자리하고 있는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Olympicstadion Berlin)은 1936년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나치 독일이 만들었다. 나치 독일은 평화 제전 올림픽을 철저히 나치 체제를 선전하는 무대로 활용했다. 우리에게는 마라토너 손기정과 남승룡이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던 경기장으로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독일은 동서로 갈렸다. 베를린도 동서로 갈렸고 동베를린은 소련이, 서베를린은 미국, 영국, 프랑스가 구역을 나눠 관할했다. 베를린 스타디움이 자리하고 있는 '올림피아 파크 베를린(Olympia Park Berlin)은 서베를린 영국 관할 지역에 속했다.
나치 독일이 남긴 상흔. 경기장 일대 역시 피해를 입었고 전쟁이 끝난 후 올림픽 공원 곳곳에 포탄이 만든 구멍이 나 있었다고 한다. 베를린 스타디움은 더한 굴욕을 견뎌야 했다. 독일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올림피아 파크를 베를린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독점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는 매년 영국 여왕 공식 생일 행사가 열렸다. 올림피아 파크를 상징하던 벨 타워 벨은 전쟁으로 불에 타버렸고, 영국은 종을 땅에 묻어버린다. 종은 1962년 다시 복구돼 오늘에 이른다. 독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독일 민족에게는 전쟁 후 치욕스러운 역사도 함께 새겨져 있는 장소가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이다.
독일 축구 FA컵 (DFB 포칼)은 1985년부터 이 곳에서 대회 결승전을 개최해 오고 있다. 1985년은 독일이 아직 동서로 갈려있고 베를린 역시 동서로 나뉘어 있던 때다. 서독 사람들은 분단 중에도 동독을 지나 베를린에서 FA컵 결승전을 개최했다. 한국과 북한처럼 전쟁을 겪으며 분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그림이었다. 결국 독일은 1990년 하나로 통일됐고, 베를린 결승전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경기장에서는 2006 독일월드컵 결승전도 열렸다. 프랑스 지단이 상대팀 이탈리아 마테라치 가슴팍에 머리를 들이받았던 그 장소다. 독일은 2006 FIFA 월드컵을 준비하며 베를린 경기장 보수공사를 진행했는데 공사를 진행하는 중에도 FA컵 결승전 개최 장소를 바꾸지 않았다. 경기장이 가지는 상징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축구 외에도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미식축구 경기 등이 열렸고, 올 7월 11일과 12일에는 BTS 공연이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취소됐다. 나치 독일, 영국군 주둔 굴욕 등 탐탁지 않은 역사가 담긴 경기장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베를린 스타디움은 독일 민족을 가장 잘 상징하는 경기장이다. 그 경기장 위에서 축구를 비롯해 음악공연 등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독일 시민들은 경기장에 서린 나치 독일과 분단의 기억을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 하나은행 FA컵 16강전이 주는 시사점 (0) | 2020.07.16 |
---|---|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 숨은 밑바탕 (0) | 2020.07.16 |
웸블리 FA컵 결승전을 장식한 백마 (2) | 2020.07.14 |
효창운동장은 독보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0) | 2020.07.13 |
박지성 등번호 13번과 관련된 서양 미신 이야기 (0) | 2020.07.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