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풋볼(Football)이라고 부른다. 사커(Soccer)라고도 부른다.
이 중 풋볼은 축구뿐만 아니라 럭비를 뜻하기도 한다.
미식축구를 아메리칸 풋볼(American Football)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왜 그럴까?
풋볼을 근대화 한 사립학교들
오늘날 축구는 중세 민중놀이 몹 풋볼(Mob Football)에서 출발한다. 각 마을 사람이 집단으로 참여해 마을과 마을이 맞붙는 경기였다. 지금 시선으로 보면 '스포츠'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고 '민중놀이'라고 부르자니 너무 과격하다. 차라리 패싸움에 가까웠다. "공을 이용했다. 발로 찬다"에서 기원을 찾고 있다. 지역마다 방식도 조금씩 달라서 어떤 지역은 손을 사용하기도 했다.
근대 사회로 발전하면서 중세 몹 풋볼이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흐름 속에서 풋볼이 잉글랜드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로 흘러 들어간다. 퍼블릭 스쿨은 '공적'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과 달리 엘리트를 양성하는 사립 기숙학교다. 각 학교들은 저마다 방식으로 풋볼 규칙을 다듬기 시작했다. 웨스트민스터, 윈체스터, 이튼, 럭비, 해로우, 차터 하우스 등이 전통 있는 엘리트 학교로 꼽힌다. 이후 학교 이름을 딴 여러 풋볼이 탄생하고 19세기 중반이 되면 각 학교에서 만든 풋볼이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졸업생들. 풋볼을 하나로 통합할, 뻔하다.
각 학교 졸업생들은 다른 학교 졸업생과는 풋볼을 즐길 수 없었다. 규칙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은 풋볼 규칙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주 의견은 공을 발로 드리블링(Dribbling) 하는 방식이었다. 1863년 10월 26일. 졸업생들은 풋볼 규칙 제정과 함께 조직 하나를 창설한다. 오늘날 잉글랜드 축구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이다. 이 때 만들어진 규칙이 오늘 날 우리가 아는 '축구'로 자리 잡는다.
이때 끝까지 규칙에 동의하지 않은 퍼블릭 스쿨이 한 곳 있었다. 럭비 스쿨이다. 럭비 스쿨이 만든 풋볼은 손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학교였다. 결국 손을 사용하지 않는 규칙에 동의할 수 없었던 이들은 1871년 1월 26일 럭비풋볼 유니온(Rugby Football Union)을 창설하며 완전히 다른 종목으로 분화하게 된다.
오늘날 축구와 럭비 두 스포츠가 모두 풋볼이란 단어를 공유하는 배경이다.
'축구 = 어소시에이션 풋볼',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흔적
국내에서는 축구 저변이 럭비를 압도하기 때문에 '풋볼'이라고 하면 대부분 축구를 떠올린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풋볼이라고만 하면 축구와 럭비를 모두를 모두 포괄한다.
때문에 초기에는 '어소시에이션 풋볼'이라고 부르곤 했다. 어소시에이션 풋볼(축구), 럭비풋볼(럭비). 이 같은 흔적은 축구를 처음 도입했을 당시 한국과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축구는 FA컵 첫 대회를 1921년 '아식축구전국우승경기회'로 두고 있다. '아식'은 잉글랜드 축구협회 규칙을 따르는 풋볼을 뜻한다. 풋볼 어소시에이션(The FA, Football Association)에서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첫 글자를 따서 A식, 아식이라고 불렀다. 1928년 5월 22일 한국에서 축구심판협회가 창설됐는데 당시 공식 이름은 '조선아식축구심판협회'였다. 이때 아식도 잉글랜드 축구협회 방식, 오늘날 축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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