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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로 가는 길, 패시브 인컴(수평적 소득)에 눈을 떠라! 월급을 왜 한 군데에서만 받아야 하는가?! 부자가 되고 싶다면 노동을 통해 버는 돈, 오직 '수직적 소득'만을 수입으로 인식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 '수평적 소득'이라는 개념을 깨우쳐야 한다. 영단어 그대로 패시브 인컴(Passive Income)이라 부르기도 한다. 패시브 인컴, 절대로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패시브 인컴(수평적 소득)은 보통 투자를 통해 발생하는 소득을 일컫는다. 해서 과거 한때에는 규모있는 거액의 부동산, 주식 등을 투자 포트폴리오로 갖춘, 부유층 사이에서나 회자되는 단어였다. 이를 제외한 수많은 이들은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수직적 소득)이 인식 가능한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 2024. 4. 2.
장준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③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장준하 선생(1918~1975)은 확고한 독립정신을 갖고, 독립전쟁이라는 대의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 대장정을 감행한 정의로운 청년이었다. 1) 해방된 조국으로 귀국 1945년 11월 23일. 장준하는 귀국 비행기에 올라 김포 비행장에 도착한다. 해방 후 백범 김구의 비서로 일했고 1946년 5월에는 철기 이범석 장군이 주도하는 조선민족청년단 교무처장으로 일한다. 이로 인해 '족청계'로 분류되었으나 이내 관계가 소원해졌고 1949년 2월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에 편입해 학교를 졸업한다. (1993년 한신대는 졸업생 중 모교를 빛낸 인물에게 수여하는 제 1회 한신상 수상자로 장준하를 선정하기도 했다.) 1949년 6월 26일, 백.. 2023. 6. 17.
장준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②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장준하 선생(1918~1975)은 확고한 독립정신을 갖고, 독립전쟁이라는 대의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 대장정을 감행한 정의로운 청년이었다. 일본군 '자원입대' 이후 한국광복군으로 활동 1) 일본군 소속으로 중국행 일제는 패망을 앞두고 조선 청년들을 강제징용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학도병에 지원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징용영장을 발급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장준하는 평양의 일본군 제42부대에 입영한다. 1944년 1월 20일이었다. 장준하는 애초 탈영 및 중국으로의 망명을 위해 일본군에 자원입대했다. 입영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환송연에서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해서 꼭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의미.. 2023. 6. 16.
장준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장준하 선생(1918~1975)은 확고한 독립정신을 갖고, 독립전쟁이라는 대의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 대장정을 감행한 정의로운 청년이었다. 일본군에 강제징집되기 전까지의 생애 1) 유년기 : 기독교 신앙심과 배일(排日)의식을 가지고 성장 장준하는 1918년 8월 27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아버지 장석인 목사, 어머니 김경문 여사의 4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장준하가 태어난 평북 의주는 북방관문으로 일찍이 주민들이 신문명을 접하고 수용한 진취적 기상이 강한 곳이었다. 애국자와 선각자를 많이 배출했으며 천주교와 개신교가 유입되는 통로로 기독교 신자가 많았다. 장준하 역시 할아버지 장윤희와 아버지 장석인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 2023. 6. 14.
전남매일신문 사직서(5.18 광주)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한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5.20 전남매일신문기자 일동 외람이들이 보고 느껴야 하는 성명. 2022.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