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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한국의 근대를 만든 순간들

조선을 찾은 영국의 배들

by 소벌도ㄹI 202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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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찾은 영국 배 연혁을 훑어보면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확인할 수 있다. 최초의 기록은 1797년이다.

 

1797. 영국군함 프로비던스(Providence)호. 원산 근해를 지나감. 원산만을 함장 이름을 따 브로우튼 만(Broughton Bay)이라고 명명한다.

1832. 로드 아마스트호(The Lord Amherst)가 충청도 홍주 고대도 부근에 1개 월 정박하며 통상 교섭을 요구한다. 쇄국정책을 펼치던 흥선대원군은 영국의 통상 요구를 거부한다.

1860. 러시아 제국이 연해주를 점유하면서 남진정책을 펼친다.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과 관계수립을 모색한다. 일본을 통해 부산 왜관무역에 개입, 부산에 군대주둔권을 요구한다. 1866년에는 청나라에 조선과 통상관계 알선을 요청, 독일인 오페르트(Oppert)에게 조선정부와 협상을 부탁한다.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과 민비가 집권, 대외 교류에 나섬

쇄국정책을 펼치던 흥선대원군이 실각한다.

 

1875년. 일본군함 운양호(雲揚號)가 강화도를 포격

187623(음력). 조선과 일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체결.

이에 주일 영국공사 파크스(H. Parkes)는 영국 정부에 전략적 요지 거문도(Port Hamilton)를 점령, 조선과 통상관계 수립을 권고한다. 영국정부 수락하지 않는다. 파크스는 일본을 찾은 수신사 김기수와 교섭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영국은 지속적으로 조선과 외교관계 수립을 시도했다.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일본은 조선과 근대조약을 체결한다.

 

1876 가을. 군함 실비아(Sylvia)호와 스윙거(Swinger)호를 경상도 해안으로 보내서 연안을 측량케 한다.

18789월. 영국 범선 바바라 테일러(Babara Tayler)제주도 근해에서 난파, 조선 측이 선원을 구해준다. 이에 감사를 표한다는 명목으로 나가사키(長崎) 영사관원 폴(Paul)이 제주도를 방문해 조선과 접촉한다. 11월에는 서기관 사토우(Satow)를 한국에 파견하여 본격적인 접촉을 시도한다. 한국정부, 파크스의 시도를 거부한다.

1881년. 영국 군함 페거서스호(The Pegasus), 조선과 교섭을 시도, 실패한다.

18825월. 조선과 미국이 인천 제물포 화도진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청나라 주재 영국공사 웨이드(Wade,F.F)는 청나라에 조선과 알선을 요구한다.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조선은 근대 외교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1882년 6월(음력). 청국함대사령관장 수군제독 조지 윌스(Goerge Willes) 군함 비질란트(Vigilante)를 타고 제물포에 입항한다. 전권대신 조영하 부관, 김홍집 등과 회담을 가진다. 조선과 영국, 14조를 갖춘 조약원안을 약정한다. 하지만 영국정부는 비준을 거부 재협상을 추진한다.

18826월. 영국의 측량선 플라잉 피시호 인천 제물포에서 임오군란 발발로 도망치던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일행을 구출한다.

일본 공사 하나부사 일행을 구출한 영국의 플라잉 피시호.

 

18827 엔카운트(Encounter) 호가 조선 내 상황을 견제하기 위해 제물포를 찾는다. 당시 미국 군함 모노카시호도 정박 중이었다.

18831126. 조선과 영국이 재협상을 가지고 조영수호통장조약 체결한다.

188477. 조선과 러시아 조약체결

1885427 영국, 러시아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함대 세 척을 거문도에 파견, 불법 점거한다. (거문도 사건)

1887년 거문도를 점거하던 영국군이 철수한다. 

18909, 존 코프(고요한) 주교, 영국성공회 선교단과 함께 인천 제물포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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