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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한국의 근대를 만든 순간들13

장준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③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장준하 선생(1918~1975)은 확고한 독립정신을 갖고, 독립전쟁이라는 대의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 대장정을 감행한 정의로운 청년이었다. 1) 해방된 조국으로 귀국 1945년 11월 23일. 장준하는 귀국 비행기에 올라 김포 비행장에 도착한다. 해방 후 백범 김구의 비서로 일했고 1946년 5월에는 철기 이범석 장군이 주도하는 조선민족청년단 교무처장으로 일한다. 이로 인해 '족청계'로 분류되었으나 이내 관계가 소원해졌고 1949년 2월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에 편입해 학교를 졸업한다. (1993년 한신대는 졸업생 중 모교를 빛낸 인물에게 수여하는 제 1회 한신상 수상자로 장준하를 선정하기도 했다.) 1949년 6월 26일, 백.. 2023. 6. 17.
장준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②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장준하 선생(1918~1975)은 확고한 독립정신을 갖고, 독립전쟁이라는 대의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 대장정을 감행한 정의로운 청년이었다. 일본군 '자원입대' 이후 한국광복군으로 활동 1) 일본군 소속으로 중국행 일제는 패망을 앞두고 조선 청년들을 강제징용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학도병에 지원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징용영장을 발급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장준하는 평양의 일본군 제42부대에 입영한다. 1944년 1월 20일이었다. 장준하는 애초 탈영 및 중국으로의 망명을 위해 일본군에 자원입대했다. 입영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환송연에서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해서 꼭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의미.. 2023. 6. 16.
장준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장준하 선생(1918~1975)은 확고한 독립정신을 갖고, 독립전쟁이라는 대의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 대장정을 감행한 정의로운 청년이었다. 일본군에 강제징집되기 전까지의 생애 1) 유년기 : 기독교 신앙심과 배일(排日)의식을 가지고 성장 장준하는 1918년 8월 27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아버지 장석인 목사, 어머니 김경문 여사의 4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장준하가 태어난 평북 의주는 북방관문으로 일찍이 주민들이 신문명을 접하고 수용한 진취적 기상이 강한 곳이었다. 애국자와 선각자를 많이 배출했으며 천주교와 개신교가 유입되는 통로로 기독교 신자가 많았다. 장준하 역시 할아버지 장윤희와 아버지 장석인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 2023. 6. 14.
관립외국어학교 연혁 간단 정리 영어학교(1894) - 관립외국어학교(1895) - 폐지(1911) 3. 관립외국어학교 (관립영어학교) ▶ 1895년 5월 12일자 칙령 제88호 외국어학교관제(外國語學校官制)에 근거하여 육영공원을 '관립영어학교(官立英語學校)'로 전환. 영국 출신 허치슨(Hutchison,W. F., 轄治臣)과 핼리팩스(Hallifax,T. E.)가 교수직을 담당. 허치슨은 1893년 3월 강화도에 설치된 해군무관학교(海軍武官學橋)에서 영어를 가르침. 핼리팩스는 동문학(同文學)에서 3년 가량 영어를 교습했던 인물. ▶ 1900년 6월 27일 외국어학교규칙(학부령 제11호)에 따라 일어학교, 영어학교, 법어학교, 아어학교, 한어학교, 덕어학교로 분교. 수업연한은 일어, 한어학교 3년. 그 외에는 5년 수업을 무료로 진행... 2021.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