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주는 의미
몽양 여운형은 해방 후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을 위해 힘썼다. 1948년 첫 출전 이후 꾸준히 올림픽 출전을 이어온 대한민국. 올해 개최 예정이었던 2020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 19 여파로 1년 연기됐다. 대한민국 올림픽 참가 역사는 전 세계와 함께 올해 한 차례 쉼표를 찍게 됐다.
한국 체육은 냉전 구도 속에서 불참했던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제외하곤 줄곧 올림픽 대회에 참가해 왔다. 지금이야 '대한민국(KOREA)'이란 이름으로 으레 참가하는 올림픽이지만 나라가 없던 시절에는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해야 했다.
마라토너 손기정과 남승룡이 1936 베를린 올림픽에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다. 두 마라토너가 획득한 올림픽 메달은 식민 지배를 받던 민족적 설움을 담아내며 사회적 현상으로 퍼져 나갔다. 이런 경험이 있었으니 한국사회에 '올림픽'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한 체육제전을 넘어서는 의미였다. 한국은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2년에도 올림픽(헬싱키) 참가를 거르지 않았다. 해방 후 체육인들이 올림픽 출전에 힘을 모은 배경이다.
코리아(KOREA)로 첫 출전한 1948 올림픽. 정부 수립보다 빨랐다
한국이 '코리아(KOREA)'란 이름을 내걸고 처음 출전한 올림픽은 1948년 2월 생모리츠 동계올림픽과 같은 해 8월 런던 하계올림픽이었다. 런던 올림픽은 1948년 8월 14일 폐막했는데 다음 날인 1948년 8월 15일은 한국 사회에 의미가 깊은 날이다. 대한민국 공식 정부가 수립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정부를 공식 수립하기도 전부터 올림픽에 참가했다. 어떻게 정부를 수립하기도 전에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까?
1945년 해방 후 체육계 인사들은 신생국 대한민국을 국제무대에 알리기 위해서는 올림픽에 참가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몽양 여운형은 해방 후 올림픽 출전을 위해 힘썼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몽양은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회장을 겸하며 신생국 대한민국의 올림픽 무대 참가에 힘썼다.
대한민국은 1947년 6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 제41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 인준을 받으며 올림픽 참가 길이 열린다. 정부수립 전이었지만 국제법상으로 정부 수립이 보장돼 있는 상태였다. 미군정 역시 대한민국 IOC 인준을 지원하고 나섰다. 공식 정부 수립 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IOC 인준을 받은 건 한국이 최초였다.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의 댓가
이 과정에서 희생도 치러야 했다. 미국을 오가며 올림픽 참가에 힘썼던 전경무 올림픽대책위 부위원장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일본 후지산 인근에서 목숨을 잃는다. 스톡홀름 IOC 총회에 참가하는 길이었다. 전경부 부위원장을 대신해 미국에서 IOC 인준을 돕던 사업가 이원순이 대신 총회에 참가해 일을 마무리 짓는다.
이원순 자전 <세기를 넘어서>(1989)는 "미군정 하지 중장으로부터 올림픽 대책위원회 대표로 IOC 총회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은 전 씨(전경무) 사망 소식을 들은 지 3일이 지난 때였다. 여운형 씨도 별도로 전문을 보내왔다. 모두 올림픽 위원회가 IOC에 가입되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는 부탁이었다"라고 긴박했던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인명 희생까지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IOC 인준은 신생국 대한민국을 국제무대에 알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1947년 7월 19일 대한민국 올림픽 참가를 기념하는 종합경기대회가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렸다. 기념 대회 참가차 길을 나섰던 몽양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19세 청년 한지근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장을 맡으며 한국 올림픽 출전에 힘썼던 몽양의 마지막 길이었다. 한국은 올림픽 참가를 대가로 또 다른 희생을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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