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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한국의 근대를 만든 순간들13

황성기독교청년회(황성YMCA) 간단정리 정의 1903년 서울에서 창설돼 1913년까지 활동한 기독교 청년단체. 개설 1903년 10월 28일 수요일 저녁 8시, 서울 유니언 회관(정동 공동 서적실)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가 탄생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청년회였다. 1897년 10월 대한제국 수립 이후 한성을 '황성'이라고 불렀다. 독립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청년회 이름에 차용했다. 게일·헐버트·브로크만·브라운(Brown, G. M.)·터너(Turner, A. B.)·언더우드·밀러(Miller, E. H.)·벙커(Bunker, D. A.)·에비슨(Avison, O. R.)·그레그(Greig, G. A.)·다카기(高木正義) 등 총 5개국 출신 37명(정회원 28명, 준회원 9명)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다. 초대회장에는 헐버트가 선임되었다. 이사 12.. 2021. 6. 9.
조선의 외국어 교육기관, 동문학 간단요약 동문학(1883) - 육영공원(1886) -영어학교(1894) - 관립외국어학교(1895) - 조선교육령 공포 후 폐지(1911) 동문학(同文學) 1. 개요 1883년 8월 1일 첫 국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출발. 외국과 교섭이 늘어나면서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해 설치. 중국의 동문관(同文館)을 본따 만듦. 동문관 영어학숙으로 출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던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구내에 설치. 동문학 학생들은 초,중등교육을 마친 15세 이상 양반자제들을 대상으로 수업함. 점심과 문구류 등을 포함해 학비 일체를 정부에서 부담. 운영비용은 해관의 관세 수입으로 충당함. 개화업무를 직접 담당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역점을 두며 통역학교 이상의 고등교육기관으로 기능. 교육기관으로서 동문학을 강조하기 위해 '동문학 .. 2021. 6. 9.
강화도에 해군사관학교가 생긴 이유 19세기 말 혼란스러운 대내외 정국 속에서 고종은 근대화 작업에 착수했다. 근대식 군대 양성은 역점사업 중 하나였다. 1882년 신식군대 별기군 창설이 임오군란으로 좌절한 바 있었지만 군대 양성 시도를 이어갔다. 1893년 강화도에 창설한 조선수사해방학당(朝鮮水師海防學堂)이 존재한 배경이다. 일제에 해산당한 육군사관학교, 연무공원(鍊武公院) 고종은 해군에 앞서 근대식 육군 창설을 시도했다. 1888년 육군사관학교에 해당하는 연무공원을 창설한다. 미국 출신 군사교관 4명이 참가했다. 하지만 무관을 천시하던 풍토 등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894년 7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며 무장해제당했고 신식무기도 빼앗긴다. 형식적으로 존재하다 그 해 12월 17일 군무아문(軍務衙門)에 흡수되면서 폐지됐.. 2021. 6. 8.
조선을 찾은 영국의 배들 조선을 찾은 영국 배 연혁을 훑어보면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확인할 수 있다. 최초의 기록은 1797년이다. 1797년. 영국군함 프로비던스(Providence)호. 원산 근해를 지나감. 원산만을 함장 이름을 따 브로우튼 만(Broughton Bay)이라고 명명한다. 1832년. 로드 아마스트호(The Lord Amherst)가 충청도 홍주 고대도 부근에 1개 월 정박하며 통상 교섭을 요구한다. 쇄국정책을 펼치던 흥선대원군은 영국의 통상 요구를 거부한다. 1860년. 러시아 제국이 연해주를 점유하면서 남진정책을 펼친다.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과 관계수립을 모색한다. 일본을 통해 부산 왜관무역에 개입, 부산에 군대주둔권을 요구한다. 1866년에는 청나라에 조선과 통상관계 알선을 요청, 독일인.. 2021.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