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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만드는 정보들

식민지 조선에서 자란 한 일본인이 남긴 걸작(傑作)

by 소벌도ㄹI 202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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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아츠시(中島敦). 33세에 천식으로 요절한 일본의 소설가다. 일본문학계 제2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로 불린다. 1920년 경성 용산소학교(현 서울남정초등학교)와 경성중학교(현 서울중고등학교)를 다닌, 식민지 조선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조선에서 유년기를 보낸 경험을 토대로 '호랑이 사냥', '빛과 바람과 꿈'을 썼다. 당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제국주의 모순을 드러냈고 금기였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을 학살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산월기(山月記)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951년 일본 교과서에 처음 실린 뒤로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당나라 이경량의 <인호전>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교만함과 타성에 젖어 스스로를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주인공의 파멸을 이야기했다. 아래는 산월기 내용 중 일부.

나카지마 아츠시.

 

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거나 기꺼이 시우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한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 내가 옥구슬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애써 각고하여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옥구슬임을 반쯤 믿는 까닭에 그저 줄줄이 늘어선 기왓장들 같은 평범한 속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나는 점차 세상에서 벗어나고 사람들과 멀어지며 번민과 수치와 분노로써 내 속의 소심한 자존심을 더욱 살찌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맹수를 키우는 사육사이며, 그 맹수는 바로 각자의 성정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였다. 호랑이였던 것이다. 이것이 나를 해치고 처자를 괴롭히며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에는 내 외모를 이렇게 속마음과 어울리게 바꾸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가진 약간의 재능을 다 허비해버렸던 셈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둥 입에 발린 경구를 지껄이면서도, 사실은 부족한 재능이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각고의 노력을 꺼린 나태함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부족한데도 오로지 그것을 열심히 갈고닦아서 이제는 당당한 시인이 된 자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호랑이가 되어버린 지금에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후회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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